#59 박지연 (1)

스타베팅, 얼티메이트 기획사 사무실 안.

“야, 나 좀 봐봐! 괜찮냐?”

“닥쳐! 나도 지금 바쁘니까.”

어수선한 현우와 상호의 모습에 태우가 피식 웃었다.

평소 청바지에 면티, 심하면 츄리닝 차림으로 다니던 인간들이 오늘따라 유독 치장에 열을 올린다.

뭐 무리도 아니지.

동시대 하나뿐인 싱어송라이터이자, 출연만 했다 하면 해당 드라마 시청률이 무조건 두 자리 이상이라는 특급 배우이며, 아이돌 뺨치는 외모의 소유자인 슈퍼스타 박지연이 사무실에 방문하는 날이었으니까.

“신태우, 너 그 상태로 손님 맞을 건 아니지?”

“그럴 건데요?”

“뭐 인마! 후우, 안 되겠군. 너 잠깐 이리 와 봐!”

현우가 가느다란 팔로 태우를 붙잡았다.

173의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인 현우였지만, 어디서 나온 괴력인지 자신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태우를 붙잡아 끌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박지연이 온다는데, 후줄근한 후드티 하나 달랑 입고 있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현우는 곧 집에서 가져온 트렁크를 열어 그 안에 든 셔츠를 태우에게 들이밀었다.

“야! 이거 입어.”

“뭡니까 그 화려한 줄무늬 셔츠는?”

“아 빨리! 바지야 뭐 청바지니 그렇다 쳐도 후줄근한 면티는 아니지!”

“귀찮은데…….”

“빨랑!”

네이네이.

결국 현우의 강압에 못 이긴 태우가 입고 있던 후드티를 막 벗었을 때였다.

“휘유-”

“하. 진짜. 겁나 비교되네.”

태우의 몸을 본 순간.

현수는 휘파람을 불었고, 현우는 기가 죽은 모습이었는데.

하나 이 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김진호와 이정진이었다.

“태우 형! 잠시만요! 저 사진 좀 찍어도 돼요?”

“뭐?”

“와! 대박! 진호 형! 이리 와 봐! 복근이 진짜 딱딱해!”

“진짜네! 완전 조각상인 줄!”

태우는 상의 탈의한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누르는 진호와 정진의 행동에 썩은 미소를 날렸다.

평소 어지간한 일엔 크게 반응하지 않던 녀석들이거늘.

고작 몸 하나에 뭐 이리 열띤 반응인지 원.

이에 곁에서 지켜보던 상호가 한마디 거들며 나섰다.

“저게 바로 노가다 근육이라는 거다.”

“에? 노가다 근육이요?”

“어. 쟤 3년을 공사판에서 구른 애야. 그것도 남들 다 힘들어서 기피하는 곳만 골라 다녔지 아마?”

태우는 과거 상호 밑에서 공사판에 구르던 시절을 떠올랐다.

아무런 기술도 없던 시절. 공사판에서도 가장 최하급 잡부로 일하며 벽돌과 시멘트들을 날랐던 자신이었다.

처음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지.

하나 망가진 외모를 드러내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로 작용.

그 덕에 3년을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와! 상호 형! 어떻게 운동하면 이렇게 될 수 있는 건데요?”

“글쎄? 한데 쟤 예전보다 몸이 두 배는 더 좋아진 것도 같고. 산에서 산삼이라도 드신 거겠지.”

“에에? 산삼이요?”

“어이어이. 애들 진짜 믿겠수.”

“형! 조금만 가르쳐 줘요! 어떻게 그런 몸을 만들었는지!”

“글쎄.”

인근 마을 하나 없는 깊은 산골.

아마 그때 팬 장작만 족히 나무 몇백 그루는 넘었지, 아마?

거기에 긴 나무 막대 끝에 무거운 물 양동이 지고 다닌 건 또 어떻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진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었다.

태우는 자신을 향해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두 명의 청년들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비법이 알고 싶어?”

“네!”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100m 아래 개울가서 물 길어 와서, 가마솥에 밥 짓기. 그리고 나무 한 그루씩 장작 패놓기 등등. 아, 족히 30m 높이서 떨어지는 폭포수 맞는 것도 포함하자.”

“네?”

“장난이야. 그냥 운동해 운동. 아 좀 비켜라 좀. 춥다. 얼른 옷 좀 입…….”

그렇게 태우가 막 셔츠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바로 그 순간.

삐- 삐- 삐비비비-

철컥-

“태우야, 손님 오셨…….”

“아…….”

현관문 너머로 보이는 세 명의 얼굴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얼굴 모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는 점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빨리 옷 입어!”

* * *

“하하…….”

“으음…….”

“…….”

긴 테이블.

각자 양측으로 마주 앉은 태우와 박지연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침묵.

심지어 박지연은 아직도 달아오른 얼굴이 가라앉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던 그때.

“자자, 일단 인사부터 하시죠. 태우야, 너부터 빨리!”

“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김의수가 어색함을 깨려는 듯 시킨 인사였다.

하나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니, 어색함이 배는 증가된 듯 보였는데.

에라.

그깟 상체 한 번 보여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태우가 다시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아 갔다.

“며칠 전, 매니저를 통해 연락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를 연말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해 주셨다고요.”

“예? 아, 네! 그게, 몸이 너무 좋……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태우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은 것과 별개로, 박지연은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중이었다.

이래 가지곤 도저히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터.

태우는 일부러 조금 냉정하게 말했다.

“한가지 질문드리자면, 왜 갑자기 저희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건지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박지연 님 콘서트 게스트라면, 분명 저희 말고도 많은 분들이 원하고 계실 텐데.”

“네? 아, 음…….”

찌릿-

태우는 자신에게 향한 두 마리 늑대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누구인지는 구태여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왜 굳이 첫마디부터 공격적인 질문을 하느냐에 대한 원성인 듯하다.